오조리 오조리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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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조리 코스는 오조리 마을회관에서 출발하여 마을안길,족지물,식산봉을 거쳐 광치기해변과 철새도래지를 경유하는 코스로서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곳입니다.
■오조리(吾照里) 마을길
오조리는 풍광이 빼어나다. 딛는 걸음이 아니면 볼 수 없는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여느 관광명소처럼 커다란 주차장이 있지도 않고 번잡하지도 않다. 소박하게 걷는 이에게만 오롯이 그 아름다움을 내어준다.
성산일출봉에서 솟은 해는 제일 먼저 오조리 마을을 비춘다. 오히려 일출봉 아래 성산포는 일출봉 그늘에 가리니 말이다.
오조리가 품은 호수같은 바다는 떠오른 햇살을 튕겨 마을을 한번 더 비춘다.
하늘의 해와 바다에 잠긴 듯 수면에 투영된 해가 동시에 마을을 비춘다. 아침엔 해가 밤엔 달이 그렇다.
나吾(오), 비출 照(조), 두 단어가 오조리를 잘 설명한다.
거울 앞에 선 것처럼 파도가 없는 잔잔한 오조의 내만에 서면 내가 비춰진다. 그래서 일거다. 나를 비춘다는 의미의 오조(吾照).
吾(오)는 우리라는 뜻도 있다. 나 혼자이든 여럿이든 이 바다에선 한 이름으로 비춰지는 오조인 것이다.
그래서 오조리이다. 참 멋드러진 마을이름이다
마을 회관 앞 이정표ㅡ오조리 포구방향으로 가다가 오조로 70번길로 들어서면 마을 안길을 둘러볼 수 있다.
동네 골목 모퉁이에 작은가게 하나가 단정히 자리하고 있다. 간만에 보는 글귀 '외상사절'.
이 단어 하나가 옛 기억을 불러낸다. 예전엔 동네 점빵마다 꼭 붙어 있던 글귀다. 지금은 거의 볼 수가 없는데 이 점빵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요즘같은 시대에 이 글귀를 붙이게한 악덕 손님이 있었다기 보단 가게의 옛스런 연출을 위한 주인장의 센스라고 애써 짐작해 본다. 암튼 예전의 대문앞 '개조심'문구와 쌍벽을 이루는 추억속의 단어가 절로 미소짓게 한다.
살기 어렵던 시절 동네점빵에서의 외상은 흔한 일 이었고, 80년대까지 대학가에선 학생증 맡기고 외상술을 먹을 수 있었다. 지금은 아련한 추억의 일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아메리카노가 2,000원이라는데, 들러서 한잔 사 마시고 발길을 옮겨도 좋음직하다.
마을 안길을 나와서 다시 마을회관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니 옛 창고건물이 여러 채 보인다. 이곳엔 무엇을 보관했을까. 궁금증이 인다. 오조포구와 가까이 있으니 배로 들여오거나 나가는 물품들이었겠지만 이렇게 큰 창고가 여럿 있다는건 그만큼 오조리가 번성한 마을이었다는 방증일거다.
마을에선 올레길 2코스에 위치한 이들 창고 중 하나를 내어 고기국수를 비롯한 제주음식을 파는 쉼팡을 운영하고 있다. 맛이 있기를 기대해본다.
■족지물
마을에서 식산봉으로 가는 길 입구에 작은 용천수가 있다.
마을에는 오조양어장을 끼고 '주군디물'과 '족지물' '재성물' '엉물' 등의 용천수가 솟으며, 마을 안 '얼피물''논동네'에도 샘이 있었다. 식산봉 서북쪽에 위치한 '재성물'은 과거 목욕탕으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보를 쌓으면서 차츰 변질되었고, 현재는 '족지물'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용되고 있지 않는 상태이다. 더구나 이들 물은 짠기가 있어서 음료수로는 부적당했다.
족지물이 있어서 이 동네를 족지동네라고 불렀다.
너무나 단정히 정비된 모습에서 옛정취를 찾기 힘들다. 다만 단단한 바위사이 뿌리를 내리고 물가를 지키던 오래된 큰 나무 한그루가 봄을 기다리고 있다.
족지물을 지나 고개를 들면 식산봉과 일출봉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나란히 서 있어 나그네를 반긴다.
■황근자생지
황근은 노랑 무궁화로도 불리는데 무궁화와 같은 아욱과 식물이다. 황근은 전남 완도와 제주도의 바닷가에서 자생하는데 집단군락지는 식산봉이 유일하다고 한다.
꽃모양이 무궁화와 비슷하나 색이 노랗다. 주로 7,8월에 개화한다고 하니 여름에 한번 더 와볼 일이다.
환경부지정 멸종야생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식산봉
식산봉 안내석
식산봉은 제주의 여느 오름처럼 화산폭발로 생겨난 분석구라고 한다. 그러나 식생은 다르다. 해안가에서 드물게 활엽수림이 자생하고 있고 서서히 동백나무류로 천이하는 과정에 있다고 한다.
특이한건 큰 암석들이 정상과 오름 주변에 많이 분포한다. 지질학적 지식은 없지만 일반적인 오름과는 다른 형성과정이 있었으리라고 본다. 큰 바위에 스코리아(송이)층이 덮여있는 모습이 그런 생각이 들게 한다.
정상으로 가는 길목에 제단이 있다. 말 그대로 별도로 제사(별제)를 지내던 곳이라 하는데 그 이상의 자료는 찾지 못해 아쉽다.
식산봉 오르는 길은 쉽다. 높이도 높지않고. 중간에 만난 바위에서 사람인듯 원숭이 인듯 얼굴 바위를 만났다. 날카로운 눈매과 오똑한 코를 지녔다. 비슷하게 생긴 만화속 캐릭터를 본 것 같기도 하고. 자세히 보면 앙다문 입술이 꽤나 매력적(?)이다.
식산봉 정상의 전망대
전망대에서 바라 본 일출봉과 우도
식산봉을 내려오면 만나는 '고별감 빠진 소'이다.
지명이 재미있다. 예전에 고씨 성을 가진 별감나으리가 빠져 죽었다고 한다. 수심이 보기보다 깊어 익사자가 종종 있었다고 한다.
비록 비명에 세상을 등졌더라도 비석에 한 줄 이름 새긴 것보다 오가는 이에게 고별감을 알릴 수 있으니 마냥 애석해할 일은 아닌 듯 하다.
식산봉 아래 내수면은 양어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곳곳에 둑을 설치하고 수문을 설치해 놓았다. 지금도 양어장 기능을 하는지는 모르지만 수문 사이로 바닷물이 힘차게 오간다.
1964년 양어장 공사 당시 뱀장어, 숭어, 흑도미등을 키울 예정이었다고 한다.
■오조포구/오조리감상소
성산항에 갑문이 생기기 전엔 이 포구엔 배들이 쉼없이 드나들었을 것이다. 허나 지금은 배들이 다닐 수 없으니 포구에 매어져 있는 배 한척 없다.
□오조리 감상소
오조포구의 어구를 보관하던 창고이다. 2016년도에 방영된 KBS2 드라마 '공항가는 길'의 촬영지이다. 누군가 촬영후 오조리 감상소로 이름 짓고 잠시나마 전시공간으로 쓴 듯 하다.
주인공 최수아(김하늘 분)와 서도우(이상윤 분)의 스토리로 전개되는 이 드라마에서 서도우의 작업실로 촬영된 곳이다. 지금은 관리가 안되는 듯 방치되어 안쓰럽다. 문도 창 문도 지붕도 뜯겨져 나가 흉물스럽기까지 하다.
조각보 공예가였던 드라마 속 서도우의 모친의 유서엔 자신의 작품을 전시해 주었으면 하는 공간으로 이곳을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들어가는 입구에서부터 파도소리 들리구
돌멩이 냄새에 듬성듬성 커다란 나무사이로
바람이 서벅서벅 햇살이 짜안한
고작 경운기 한대 지나갈까 말까한 거기에.
거기서 작품들이 햇살들을 쬐면서
풍경들을 다 볼 수 있게..
꽤나 시적이다. 드라마 작가의 감수성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작가는 글을 쓰고 나서 이 장소를 택했을까. 아니면 이곳을 먼저보고 나중에 글을 썼을까.
드라마에 사용되었던 전등 몇 개만이 덩그러니 걸려 있을 뿐 변하지 않은건 주변의 풍경뿐이다. 너무 무심히 방치되어 아쉽다.
그래도 드라마속 주인공의 각도로 사진한번 찍어도 좋겠다.
식산봉 건너편 올레길 2코스에서 본 일출봉
식산봉건너편 올레길 2코스
광치기 해안 방향으로 난 뚝방길
올레길 2코스의 시작점이다. 올레길이 있어 때론 나들이길이 편하기도 하다.
■성산포 유채꽃(?)재배단지
지난번 나들이 코스에서 설명한 바 있는 배추꽃밭이다. 안에 들어가지 않고 밖에서 사진을 찍으려해도 관리인이 손사래를 친다. 꽃을 피워 낸 수고로움과 한철 장사가 이해는 가지만 각박하다.
지금(2월)은 유채꽃이 필 시기가 아니다. 워낙 제주가 유채꽃이 유명하니 이 시기에 피는배추 꽃이 유채꽃으로 둔갑해 버린 듯 하다. 포털사이트 지도에도 유채꽃 재배단지로 표기되어 있고 심지어 제주관광공사 안내에도 성산포 유채꽃 재배단지로 소개하고 있다.
관광객들은 입장료 1000원씩 내고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굳이 비유하자면 부시리를 방어로 알고 먹는 식이다. 지금이라도 공식적으로 배추꽃밭으로 정정함이 맞지 않을까. 유채든 배추든 예쁜 노란 꽃이 선사하는 아름다운 풍광이라는 그 본질은 잃지 않을테니. 배추꽃만 억울할 일이다.
■광치기 해변
광치기해변은 일출사진 명소로도 유명하다. 해변이 길어서 다양한 사진포인트가 있다. 광치기 해변 구석구석과 성산일출봉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발걸음을 다시 오조리 쪽으로 옮긴다.
광치기 해변 남측 백사장
광치기 해변 옆 배추꽃밭-이곳은 무료
■오조리 철새도래지
성산 유채꽃(?)재배단지에서 맞은편 길로 가면 성산하수처리장이 나온다. 처리장 끝나는 곳에 운동시설이 있는데 담장을 끼고 들어가면 올레길 2코스 오조리 철새도래지로 이어진다.
하도에서와 마찬가지로 갇혀진 바다는 얕은 수심의 생태 환경이 조성되어 철새들의 안식처가 되고 있다.
자연이 주는 풍광을 감상하면서 상념없이 길을 따라 간다.
멀리 수면엔 철새들이 한가로이 떠있다. 물속에 감춘 다리는 빠쁘게 움직이고 있겠지만.
■소금막 길
오조리 41번길을 예전엔 소금막길이라 불렀다. 종달리보다는 못하지만 오조리에서도 소금을 생산했던 소금막이 있어서다. 지금은 흔적을 찾기 힘들다.
소금막길로 들어서는 입구에 퐁낭이 한그루 서 있고 누군가 나그네를 배려한 듯 쉬어가라고 쉼터 표지를 해 놓았다. 조촌 쉼터.
오조리를 조촌으로도 불렀는지도 모르겠다. 표지를 한 이가 조촌이라 표현했으니 그런가보다 한다.
잠시 앉아 쉬어본다.
소금막 길가의 주택
PVC파이프안에 대나무를 끼운 정낭 하나가 귤밭을 지키고 있다. 그러고 보니 나들이에서 실지 쓰이는 정낭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그래서 더 반갑다. 원래의 세개가 아닌 한개짜리 PVC 정낭이어도.
길을 사이에 두고 두 집이 길가에 울타리인 양 동백나무를 심어 놓았다. 나무의 크기로 보아 심은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난 듯하다. 마주보는 두 집이 비슷한 시기에 심은듯 한데 어떤 사연이 있었을까.
아직 지지 않은 동백꽃들이 꽤 많이 달려 있다. 빨간 꽃잎에 노란 꽃술은 강렬하다. 강렬함이 지나쳐 시들기도 전에 통째로 떨어진다. 아름다울 때 생명을 다하려고 작정한 듯이.
동백꽃은 강요배 화백의 작품 '동백꽃 지다'를 모티브로하여 4.3의 상징이 되었다.
예전엔 동백씨를 짜서 만든 동백기름이 집안마다 있었다. 볶지않은 씨에서 짜낸 것은 주로 머릿기름으로 사용했고 볶은 후 짜낸 것은 식용이나 약용으로 사용했다.
필자의 할머니가 생전에 아침마다 동백기름을 머리에 바르고 단장해서 은비녀를 꼽으시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오조리 곳곳엔 물을 대어 논농사를 지었던 곳이 꽤 있다. 지금은 습지처럼 변해 갈대와 잡초가 우거져 있다.
마을 회관 밑에 용천수가 솟아나와 인근 논에 물을 대었다는 논물이다. 지금도 물이 솟아나고 있지만 버려진듯 안내판 하나없이 갈대 줄기들만 황량하다.
논물에서 이어진 오조리 하동 마을길
오조리 상동 마을안 길
마을길에서 마주친 귤나무에 아직도 싱싱하게 귤이 매달려 있다. 찾아보니 '팔삭'이라는 품종같은데 확실히는 모르겠다. 봄이 다가오는 길목에 싱싱한 노란 빛 열매가 상큼하게 다가온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오조리에는 군사 주둔지가 있고 방호를 위한 성곽이 있었다고 하는데 그 흔적이 맞는듯 하다.
일반 가정집 돌담을 저렇게 견고하고 높게 쌓을리 없으니까.
또한 성곽의 요철부분인 치성처럼 담이 이어지다가 돌출된 부분이 있는것으로 보아 확실해 보인다.
돌담에 아로 새겨진 연녹색 이끼가 지나온 세월이 짧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비어있던 가게 자리에 누군가 둥지를 틀고 작은 잡화점 가게를 열었다. 마을이 간직한 소박한 풍경을 해치지 않고서도 당당히 제 할일 하고 있는 것이다. 젊은 주인장일 것이다.
제주의 마을 안길을 걸으면서 마주하는 이런 가게들은 느낌이 참 좋다. 또한 이런 가게들이 잘 되었으면하는 마음도 간절하다. 다음에 이 길을 지날 땐 뭐라도 하나 사야겠다.
어느덧 여정의 시작이자 끝인 마을회관앞이다.
외상사절의 주인장 센스는 창고와 맞닿은 담벼락에 조그맣게 간판을 걸어놨다. '숙이네 수퍼'라고. 들어가서 음료수라도 하나 사먹어야겠다.
출발지인 마을 회관 앞엔 4.3때 베어질뻔 했으나 마을 주민의 반대로 살아남았다는 두 그루 폭낭이 당당히 서 있어 마을을 지키고 있다.
봄을 앞두고 따스했던 겨울 여정이 끝났다.
나들이가 주는 행복이 무한했던 하루이다.